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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의료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의학교육 방향

최종 수정일: 4월 7일


 

 

양은배(2022.06). 미래 의료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의학교육 방향.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교육 소식지 제1호


많은 사람이 인공지능, 가상현실,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원격의료 등 미래 의료 환경 변화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리처드 서스킨드와 대니얼 서스킨드는 기술 혁신은 우리의 전통적인 업무수행 방식을 간소화하고, 궁극적으로는 현재의 전문직 개념을 해체할 것이라고 하였다[1]. 의료를 포함한 우리 사회 전반에서 인간의 인지, 감정, 업무 능력은 상당 부분 인공지능을 포함한 새로운 기술로 대체될 것이다. 그렇기에 의사에게는 윤리적 의사결정, 환자와의 공감, 창의력이 요구된다고 한다. 인공지능을 이해하고 다루기 위한 코딩, 소프트웨어 교육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버드 대학 총장을 역임한 로렌스 서머스는 다가올 25년은 지난 75년의 변화를 합친 것보다 클 것으로 전망하였다[2]. 미래 의료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의학교육에 대한 논의는 아직 초기 수준에 머물러 있다.


우리나라 의학교육이 의학과 의료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지금의 의학교육을 성찰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우리의 의학교육은 18세기에 만들어진 프러시아의 교육 모델을 닮았다. 지식은 과목 단위로 분절되어 교육되고 있고, 임상실습에서 학생은 여전히 지나가는 나그네이다. 강의실과 임상실습 현장에서 학생과 전공의의 경청은 최고의 미덕이다. 비판적 사고는 허용되지 않거나 요구되지도 않는다. 특정 의학지식과 술기에 대한 기억력을 정해진 시간에 일괄적으로 확인하는 표준화된 시험은 가장 가치 있는 성취도 판단 기준이다. 시간이 지나면 학생과 수련생 대부분은 그들이 함양한 역량과 관계없이 진급한다. 어느 정도 변화가 있기는 했지만, 의과대학 임상실습 교육이나 전공의 수련교육도 과거의 도제교육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사회를 위한 봉사, 의과학 발전을 위한 연구,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사가 되겠다는 학생과 수련생의 꿈은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 개업이라는 평범한 꿈으로 바뀌고 있다. 그래도 지금까지의 의학교육은 성공적이라 할 만하다.


의학교육은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진료 의사, 의사과학자를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미래 사회의 요구와 의료 환경을 분석하고, 이에 따라 의학교육 개선을 시도한다. 하버드 의과대학의 사례 중심 교육, 연구력 함양 교육과정, 팀 바탕 학습과 거꾸로 학습과 같은 교수방법의 변화에 대해서 말한다. 윤리적 의사결정 능력, 창의력과 같은 것이 미래 의사에게 더욱 중요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제안의 어떤 것은 구체적이고, 어떤 제안은 명제적 선언일 뿐이다. 의학교육이 미래 의료 환경 변화에 전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고민해야 하는 몇 가지 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교육, 연구 및 진료의 융합 교육이 확대되어야 한다. 미래 사회는 연결성이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인간과 인간의 연결, 인간과 사물의 연결, 인간과 인공지능의 연결이다. 연결의 핵심은 융합이다. 지금의 의학교육이 이러한 연결, 또는 융합을 가능하게 하는 교육을 하고 있느냐고 질문해 본다면 대답은 분명하다. 플렉스너 보고서가 발표된 1910년 이후 의학교육은 기초 및 임상의학 지식을 학습한 후, 임상실습으로 이어지는 연역적 교육을 강조해 왔다. 인턴, 전공의 수련 과정에 들어가서야 환자의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경험적 학습이 이루어진다. 지난 100년 동안 의학교육은 이렇게 이론과 경험을 분리하였다. 학생과 수련생은 자신이 혼자 처리해야 하는 일은 능숙하게 수행하지만, 집단으로 융합 또는 협업해야 하는 과제는 미루기 일쑤다. 협업으로 해야 하는 과제가 제시되지도 않는다. 지식과 경험, 연구와 진료는 구분되는 개념이 아니다. 의과대학 1학년부터 임상실습을 시작하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실제 환자 사례를 중심으로 기초와 임상이 통합되는 귀납적 모델, 창의적인 연구를 통한 이론 학습, 프로젝트 수행을 통해 지식과 경험을 융합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타 학문 분야와의 연계를 강화하고 그들의 언어와 소통방식을 학습하는 것이 융합이다. 의과대학과 수련병원, 교실 단위의 의과대학 조직, 교수의 전공 칸막이를 없애고 새로운 융합을 시도해야 한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기준으로 새로운 융합과 연결이 의과대학 및 수련 병원 조직 전반에 일어나야 한다.


둘째, 토론과 협업을 위한 새로운 의학교육 모델이 필요하다. 인간의 사고는 지식을 기반으로 한다. 지식 없이는 창의적 사고가 불가능하다. 이러한 지식이 환자 진료라고 하는 임상 맥락과 연결되지 않으면 의미 있는 사고는 불가능하다. 문제는 어떤 지식을, 어떻게 학습하는가이다. 앤더슨은 지식을 네 가지로 분류한 바 있으며, 사실적, 개념적 지식보다 절차적, 상황적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미네르바 스쿨(캠퍼스 없음, 100% 기숙사 생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전문가들이 온라인 교육과정 제공), 플랫아이언스쿨 등은 교육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학생 개인별 맞춤형 학습을 제공하는 드림박스, 뉴턴, 리즈닝 마인드가 개별화 학습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칸 아카데미, 테드, 코세라, 에덱스, 유데시티 등 많은 온라인 플랫폼은 풍부한 자기주도학습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스탠퍼드, 듀크 의과대학은 전 세계의 다양한 온라인 의학 콘텐츠를 활용한 교육으로 전환하고 있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질의, 응답 시스템을 운영하는 곳도 있다. 의학지식을 배우기 위해 강의실에 가야 한다는 것은 난센스다. 슈바르츠스타인과 로버트는 의사를 교육하는데 더 이상 강의실 강의가 유용하지 않다고 말한다[3]. 지식의 습득은 개별화된 온라인 플랫폼에서 학생 개개인에게 주어진 책무로, 대학의 강의실은 토론과 협업을 하는 공간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토론과 협업의 공간이 의과대학을 넘어 실제 환자 진료 현장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셋째, 의사의 사회적, 감성적 역량을 함양해야 한다. 미래 사회는 의료, 의학의 제반 문제가 사회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렇기에 타인에 대한 공감, 타인에 대한 이해, 의사소통, 협상, 윤리적 태도, 사회적 책무성 등 의사의 사회적, 감성적 역량은 더욱 중요해졌다. 세계경제포럼은 이러한 새로운 교육을 사회적·감성적(social and emotional) 교육이라고 표현하였다. 일찍이 핵에너지 시대를 예고한 알버트 아이슈타인은 “인간 정신이 테크놀로지를 항상 지배하고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미국의 유명한 저널리스트 시드니 해리스도 “진정한 위협은 컴퓨터가 사람처럼 생각하는 것이 아닌 사람이 컴퓨터처럼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것들은 의학교육이 ‘사회적·감성적’ 역량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사회적, 감성적 교육은 강의실에서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몇 번의 특강이나 지식 전달로 이러한 영역의 교육적 효과를 기대한다. 학생과 수련생이 이러한 주제에 민감하도록 그들을 의료, 사회 현장으로 보내야 한다. 스스로 고민하고 문제를 성찰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넷째, 학생의 에너지의 방향을 전환 시켜야 한다. 의과대학 학생 사이에는 과목이 끝날 때마다 ‘머리를 비워야 다음 과목 공부를 할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의과대학 학습 분량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생은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투입해서 공부만 한다. 그것도 학생이 의사로서 활동하게 될 10년~15년 후에는 쓸모없을 수 있는 지식을 암기하고 술기를 익히기 위해서 공부한다. 의학교육은 학생을 의료인으로 사회화시키는 형성학습(formative learning), 과거로부터 축적된 의학 지식을 배우는 정보학습(informative learning)을 지향해 왔다. 하버드 의과대학의 암스트롱과 바지온은 의과대학 학생은 사회를 이끌어가는 변화 에이전트(change agents)로 성장해야 한다고 말한다[4]. 의과대학 재학 동안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잠재력을 개발하고 변화 에이전트로 성장하기 위한 전환학습(transformative learning)을 해야 한다. 학생이 투입하는 에너지를 전환학습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의학교육 방법이 아니라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 어떻게 하면 강의를 잘 할 수 있는지, 국가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게 할 것인지를 뛰어넘는 것이다. 아직 해결되지 않는 의학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 지적 호기심을 갖고 탐구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가 투입되어야 한다.


세상은 변했다, 과거보다 더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그러나 의과대학과 전공의 수련 교육은 보수적 관점을 유지하고, 사회적으로 용인된 안전한 전통에 안주해 있다[5]. 일부 변화의 목소리와 개선이 일어나고 있지만, 현재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대안을 마련하는 수준이거나 효율성을 추구하는 수준이다. 의학교육의 목적은 의학지식과 기술을 다음 세대 의사에게 전수해 주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의료, 의학 분야의 변화 촉진자를 길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기 위한 의과대학의 혁신과 문화가 필요하다.

 

참고문헌

Susskind R, Susskind D. The future of the professions:How the technology transform the work of human experts. Oxford University Press, 2015.

Summers LH. What you (really) need to know. New York Times, 2012년 1월 20일 <http://www.nytimes,com> (2022.11.26.일 접속)

Schwartzstein RM, Roberts DH. Saying goodbye to lectures in medical school: Pradigm shift or passing fad?.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377;7:605-607.

Amstrong EG, Barsion SJ. Creating "Innovator's DNA" in health care education. Academic Medicine 2013;80:1-6.

Horton R. Offline: If I were a rich man. The Lancet 2010;376(9757: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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