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제도 개선을 위한 제안
- ynara2511
- 4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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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4월 7일
이 칼럼은 2024.03.08일 보건복지부 주관 수련제도 개선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의토론문을 재정리한 칼럼입니다.
정부의 필수의료 패키지 발표와 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 정책 추진에 대해 이해관계자의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국민 건강과 생명, 건강한 의료시스템이라는 공통의 지향점에도 이해관계자에 대한 존중과 원활한 소통이 미흡한 부분을 보면서 대학교수의 한 사람으로 엄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전공의 수련에 대한 올바른 방향 설정과 실천적 대안이 마련되기를 기대하며 몇 가지 제안을 한다.
첫째, 전공의 수련은 높은 사회적 수익을 창출하는 과정이다. 전공의가 왜 긴 시간 동안 전문의가 되기 위한 수련을 받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전공의는 다른 많은 직업인과 마찬가지로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이나 훈련을 통해 미래에 경제적 안정을 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전공의 수련은 직업인으로서의 경제적 관점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 구성원에게도 귀속되는 사회적 수익이 크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즉 전공의 수련은 국민의 건강, 공공의 건강을 지키는 전문의를 양성하는 굉장히 중요한 과정이며 사회의 의료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전공의 수련을 통해 지난 70년 동안 배출된 전문의들이 우리나라 의료서비스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전공의 수련이 이러한 사회적 가치와 사회적 수익을 창출한다면 전공의 수련에 대한 국가의 재정적 투자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 된다. 전공의 특별법 제3조에서도 국가는 전공의 육성을 필요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전공의 수련 과정이 사회적 수익을 창출하는 과정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둘째, 우수한 전문의 양성 과정인 전공의 수련에 대한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 전공의는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환자의 안전을 지키는 데 중요한 의료진이지만, 우수한 전문의가 되기 위해서는 수련을 잘 받아야 하고 그러한 수련을 받도록 할 책임이 국가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전공의 수련을 잘하기 위해서는 수련병원에 대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 수련병원에 의과대학 학생이 실습을 나오면 의사들의 생산성은 30~40% 감소하고, 전공의 수련 교육기관의 비용도 수련 기관이 아닌 기관보다 36% 증가한다(Cooke, 2010). 그동안 전공의 수련병원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지원은 미흡한 수준이었다. 필자는 2019년 전공의 수련에 들어가는 비용이 연간 8,200백만 원이고 전공의 전체 수련을 위해서는 1조 9천억 원의 재원이 필요하다고 제시한 바 있다(양은배, 2019). 국가를 포함하여 전공의 수련 기관이 소재하고 있는 지자체도 중요한 책무가 있다. 최고 수준의 전문의를 통해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받는 국민도 전공의 수련 비용을 부담할 의지가 있어야 한다. 전공의 수련 비용 지원 당위성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전공의 수련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미국의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에서 전공의 수련과 관련하여 직접비용(전공의 인건비, 지도전문의 지원 등), 간접비용(수련교육 병원의 전공의로 인해 발생하는 비효율적인 비용을 보상하는 성격)을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셋째, 전공의 수련병원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책무성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은 수련병원 지정기준을 시설, 장비 및 진료실적을 중심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현재 전공의 수련병원으로 지정된 곳은 247개 이다. 수련병원 대부분이 좋은 전공의 수련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수련병원에 따라서는 연차별 전공의가 1~2명인 곳도 있고 격년으로 정원을 배정받는 곳도 있다. 상대적으로 많은 전공의 정원이 배정되는 상급병원이 전공의 수련에 적합한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전체 전공의의 36%가 적절한 교육지도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조사된 보고서도 있다(김민경 외, 2017). 전공의들은 수련 교육 경험은 부족하고, 수련 프로그램이 잘 안되어 있으며, 수련 환경은 열악하며, 지도전문의는 준비가 안되어 있다고 말한다(양은배, 2021). 이러한 원인이 전공의 수련병원으로서의 정체성 확립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정체성이란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전공의 수련병원은 환자 진료와 더불어 전공의 수련이 정체성이 되어야 한다. 전공의 수련병원 지정기준을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보완하고 기존의 병원이 전공의 수련병원 정체성을 갖고 있는지 전공의 수련 관련 책무성을 다하고 있는지 재평가되어야 한다. 필요한 경우 전공의 수련병원의 통합과 축소도 검토하고 새로운 전공의 수련 모델(네트워크 수련)을 개발하여 정착시켜갈 필요가 있다.
넷째, 전공의를 수련하는 지도전문의에 대한 교육과 지원이 있어야 한다. 전공의 수련은 각 전공 영역별 지도전문의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지도전문의는 의무와 책임만 있지 권한과 지원은 거의 없다. 2021년 전공의 수련의 본질과 수월성에 관한 연구에서 지도전문의들은 전공의 수련을 잘하고 싶어도 잘할 수 없는 수련병원의 환경에 대해서 지적한다(양은배, 2021). 전공의 수련을 담당하는 지도전문의에게 적절한 보상과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책임지도전문의가 80%이상의 시간을, 지도전문의가 40%이상의 시간을 수련교육에 투자하는 미국의 사례는 좋은 시사점이다. 지도전문의가 전공의 수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수련교육을 위한 보호시간(protected time for resident training)’개념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지도전문의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여 전공의 수련이 내실있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다섯째, 전공의 수련과 관련한 제도 개선을 논의할 때 전공의가 우려하는 사항 중의 하나는 수련 프로그램이나 수련환경이 개선되기보다는 현재 상황의 지속이나 오히려 더 나빠질 것에 대한 우려이다. 예를 들어 의과대학 졸업 후 의무수련, 수련면허와 독립진료 면허의 구분 등이 일면 타당성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칫 전공의 수련환경을 더 나쁘게 만들거나 규제와 통제 수단이 될까 우려한다. 이러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서 전공의 수련 제도 개선을 위한 멘탈 모델(mental model)이 공유되어야 한다. 멘탈 모델은 어떤 개념이나 아이디어, 사물, 사건, 현상 등에 대해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이해의 틀을 의미한다. 우리는 공통된 멘탈 모델을 갖고 있을 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멘탈 모델의 공유는 처음부터 전공의 수련제도 발전 방안을 함께 논의하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 변화 과정에 중요한 이해관계자인 전공의들이 처음부터 함께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023년 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5개 정책 합의가 있었다. 전공의 근무여건 개선, 수련병원의 전문의중심 인력운영, 수련 내실화, 수련비용 지원, 전공의 권익 강화 등이 그 내용이다. 이제 이러한 합의와 전문가 의견이 수련교육 현장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세부 정책을 빠르게 만들어 가야 한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이러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우려도 있다. 세계 최고의 의료시스템 구축을 위해서 논의해야 하는 많은 발전 과제가 있다. 한시적 위원회가 아니라 상설 기구에서 의료계의 많은 전문가가 지혜를 모으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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