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한 의사양성체계에 대한 고찰
- ynara2511
-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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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4일 전
양은배(2020.12).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한 의사양성체계에 대한 고찰, 대한공공의학회 20년사: 과거, 현재, 미래 228-245.
서론
우리나라 의료제도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을 만큼 급진적인 변화를 겪어왔다. 1970년대 이후 전 국민의료보험제도와 의료전달체계의 도입, 1990년대 이후 많은 의과대학 신설, 2000년대 들어오면서 시작된 의약분업 등 굵직굵직한 제도의 도입이 그 좋은 예다. 2020년에는 한방 첩약 급여화, 원격의료 등 새로운 쟁점도 있다. 의사양성체계도 변화의 과정이었다. 일반대학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한 학생을 선발하는 의학전문대학원 제도 도입, 의학전문대학원의 의과대학 전환 허용, 의사면허 실기시험 도입, 인턴제도 폐지 논의, 전공의 수련 기간 및 체제 개편, 수련환경평가위원회 신설 등 열거할 수 없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최근에는 공공의대 신설, 지역의사 양성을 위한 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 등의 쟁점도 있었다. 의료 공공성에 대한 논의, 의사의 사회적 책무성 강화 요구, 의료의 접근성과 질적 수준에 대한 형평성 문제 등도 의사양성과 관련된 중요한 쟁점이다. 벌써 몇 년째 국내 유명 대학병원의 일부 임상 과에는 전공의 지원이 거의 없는 수련의 불균형도 심각한 문제로 이야기 되고 있다. 정부, 의과대학 및 수련 기관 모두 우려를 표명하고는 있지만, 이 문제를 놓고 당사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심도 있는 연구나 대책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이런 제도들이 의료수요와 국민 의료비 증가에 대처해 온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그러나 사전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급하게 제도를 도입한 일이나 이들 제도가 남긴 후유증을 치유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에서 의료 또는 의학교육 관련 제도들이 도입되는 과정에서 정부와 의료계 사이에 충분한 사전 논의나 협의 과정을 거친 적이 별로 없다.
이 글에서는 우리나라 의사양성체계의 옳고 그름을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의료 공공성에 대해 논의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는 의사양성과 관련된 일이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는 일일 뿐만 아니라 의료서비스 제공, 의과학 기술의 발전을 넘어 사회 전반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일임을 확인하는 한편, 정부는 물론 의학교육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이런 문제에 대해 발전적 논의와 합의가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 지금부터라도 정부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협력해가며 좀 더 정확하게 문제를 인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의사양성체제와 관련한 많은 연구와 논의들이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이 글에서 완전히 새로운 작업을 하거나 관점을 제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글에서는 기존의 연구와 논의를 토대로 우리나라 의사양성체제의 발전과정에 대해 살펴보고, 의료 공공성 관점에서 의사양성체제의 문제점을 고찰하며, 마지막으로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한 의사양성체제 발전 방향을 제언하였다.
우리나라 의사양성체제의 발전
의사양성체제라는 용어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는 것이 글을 읽어 내려가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안덕선 등(2018)은 의사양성체제(medical education system)를 의사를 만들어내기 위한 의학교육 및 이와 관련된 제도를 의미한다고 정의하였다. 여기에서 의학교육(medical education)은 의사를 전문직업인으로 양성하기 위한 교육을 의미하고 의학교육에 포함되는 교육과정에는 의사가 되기 위한 첫 단계인 의과대학 교육(Basic Medical Education, BME), 의사로서의 보편적 역량과 전문역량을 수련하는 졸업 후 수련교육(Post-Graduate Medical Education, PGME), 그리고 이후 의사 활동을 종료하는 시점까지 계속되는 지속적전문성 개발(Continuing Professional Development, CPD)이 있다고 보았다. 졸업 후 수련교육은 다시 의사로서 갖추어야 할 일반적인 역량을 배양하는 인턴 과정, 특정 전문과목 영역의 레지던트 수련 과정, 세부 영역의 전공역량을 개발하기 위한 분과 수련 과정으로 세분되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일반적으로 의사양성체제를 구분하는 의과대학 교육과 졸업 후 수련교육으로 나누어서 역사적 발전과정에서 나타난 몇 가지 특징을 중심으로 정리하였다.
1. 의과대학의 양적 성장과 의사양성체제의 발전
20세기 초 우리나라 의학교육은 일제 식민지 교육정책과 밀접하게 연결된 ‘전문학교 교육’이었다. 조선총독부의 조선교육령은 한국에서의 교육을 보통교육, 실업교육 및 전문교육으로 한정했으며, 학교의 명칭, 수업연한과 내용을 달리한 차별적인 학제를 도입하여 조선인과 일본인을 별도로 교육하였다. 전문학교는 실업학교 이상의 고급 기술을 교육하기 위해 근대 일본과 일제 강점기 당시 조선, 대만과 만주국에 있었던 학교 형태였다. 전문학교에서는 대학 수준의 고등교육을 제공하였으나 학술적 내용이 아닌 전문적 기예나 지식을 교육하는 것에 국한되었다. 당시 의학교육을 실시한 전문학교는 조선총독부 전문학교 인가 연도 기준으로 조선총독부의원부설강습소(1913, 이 강습소는 1916년 경성의학전문학교로 변경),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1917), 대구의학전문학교(1933), 평양의학전문학교(1933),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1938), 광주의학전문학교(1944) 등이다. 이러한 전문학교의 수업연한은 3년으로 제한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4년제로 승격되었다. 1932년에 예과 2년, 본과 4년의 6년제 학제를 갖춘 경성제국대학 의학부가 설립되었는데, 이 대학은 일본인 중심의 의학교육 기관이었다.
1945년 해방 이후 3년 동안은 미군정이 실시된 기간이다. 이 시기에는 교육 관련 자문 및 심의 기구 역할을 담당한 미 군정청 학무국의 ‘조선교육심의회’가 우리나라 교육 전반에 대한 문제를 다루었다. 조선교육심의회는 6-3-3-4(의과대학 6년)의 단선형 학제를 채택하였다. 이에 따라 의학교육은 의학 기능인 양성에서 학술적 연구를 포함한 고등교육의 목적으로 승격되었다. 경성대학교 의학부와 경성의학전문학교가 폐지되고, 국립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 설립되었고, 세브란스 의학교(지금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지금의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대구의학전문학교(지금의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광주의학전문학교(지금의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등이 6년제 의과대학으로 개편되었으며, 이화여자대학교에 의과대학이 신설되면서 1950년대 초까지 6개의 의과대학이 있었다.
1950년대 이후 새로운 의과대학이 신설되기 시작하였다. 의과대학은 1950년대 초반에 가톨릭의대와 부산의대가 설립되어 8개교로 늘어났고 1960년대에 경희의대, 전북의대, 조선의대, 충남의대 및 한양의대의 5개교가 신설되어 의과대학의 수는 13개가 되었다. 1970년대에도 중앙의대를 시작으로 계명의대, 순천향의대, 연세원주의대, 영남의대 및 인제의대 등의 6개교가 신설되었다. 1980년대에는 모두 12개의 의과대학(건국의대, 경상의대, 고신의대, 단국의대, 동국의대, 동아의대, 원광의대, 아주의대, 울산의대, 인하의대, 충북의대, 한림의대)이 신설되어 총 31개의 의과대학이 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도 의과대학의 신설은 계속되었는데 1995년까지 대구가톨릭의대, 강원의대, 건양의대, 관동의대, 서남의대 등 5개교가 신설되었고 1990년대 후반에도 제주의대, 을지의대, 성균관의대, 포천중문의대, 가천의대 등 5개교가 신설되어 의과대학의 수는 모두 41개교가 되었다. 2020년 현재는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의학교육 부실로 폐교된 서남의대를 제외하고 40개의 의과대학에 입학정원 3,058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의과대학 신설의 필요성에 대한 다양한 의견에도 불구하고 의과대학의 양적 성장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사 인력 배출의 양적인 확대를 의미한다. 특히, 국공립 의과대학보다는 사립 의과대학의 신설이 눈에 띄게 많았다는 점은 사립 의과대학들이 우리나라 의사 인력 배출에 많은 이바지하였다는 점을 의미한다. 의과대학의 양적 성장이 계속되었던 2000년대 이전에는 의료 공공성에 대한 개념이 크게 대두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연 도 | 의과대학 | 개설 대학 수 | 총 대학 수 |
~1950 | 경북(국립), 고려, 서울(국립), 연세, 이화, 전남(국립) | 6 | 6 |
1951~1955 | 가톨릭, 부산(국립) | 2 | 8 |
1956~1960 |
| 0 | 8 |
1961~1965 | 경희 | 1 | 9 |
1966~1970 | 전북(국립), 조선, 충남(국립), 한양 | 4 | 13 |
1971~1975 | 중앙 | 1 | 14 |
1976~1980 | 계명, 순천향, 연세원주, 영남, 인제 | 5 | 19 |
1981~1985 | 경상(국립), 고신, 원광, 인하, 한림 | 5 | 24 |
1986~1990 | 건국, 단국, 동국, 동아, 아주, 울산, 충북(국립) | 7 | 31 |
1991~1995 | 대구가톨릭, 강원(국립), 건양, 관동, 서남 | 5 | 36 |
1996~2000 | 제주(국립), 을지, 성균관, 차, 가천 | 5 | 41 |
2018 | 서남(폐교) | -1 | 40 |
의과대학의 양적인 성장이 지속하는 가운데에서도 의학교육의 질적인 향상을 위한 변화도 꾸준히 일어났다. 의사양성체제와 관련한 가장 큰 변화는 의사국가시험을 통한 개인의 의사면허 자격 검증 체계화와 의과대학 인증평가 시스템을 통한 대학의 책무성 강화 노력이다. 이러한 변화는 의료인이 갖추어야 하는 역량과 자질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검증하는 시스템을 통해 국민의 건강을 유지하고, 국민이 안전하게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료 공공성 강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의사국가시험의 기능은 의과대학 교육을 마친 졸업생을 대상으로 기본 진료 의사로서 적절한 능력을 갖췄는지를 평가하여 이 기준을 통과한 사람에게 의사 자격을 주고 의료업에 종사할 수 있는 면허를 부여하는 데 있다. 우리나라에 의사국가시험 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52년이다. 그 뒤 68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기까지 의사국가시험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몇 가지 큰 변화를 지적하자면(백상호, 2013), 시험을 주관하는 기관이 정부 부서에서 공익 중심의 민간 전문 평가기관으로 옮겨진 것을 시작으로 시험목표 설정, 시험과목 수의 감소, 과목별 시험 문항 수의 증가, 문항의 질 및 형태개선, 시험장소의 분산, 시험기관의 조직보강 및 업무확장, 시험업무의 전산화, 국제기구와의 협력체계 구축, 2009년부터 도입된 실기시험의 도입 등이다. 이제 의사국가시험은 의학지식뿐만 아니라 의과대학 졸업생들의 수행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게 됨으로써 개인의 자격 검증에 있어서 상당한 타당화를 이룩하였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의사국가시험에 윤리 관련 문항의 포함, 실제 임상표현 중심의 국가고시 출제, 컴퓨터 기반 국가시험 개발 등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의사국가시험의 변화는 대학의 의학교육내용, 방법과 학생들의 시험 준비 태도에도 상당 부분 영향을 주고 있다. 둘째, 의과대학 인증평가제도는 외부기관이 시행하는 평가를 통해 의학교육의 질적 향상을 추구하고, 의과대학의 교육 책무성을 향상시키는 수단이다. 우리나라는 의사양성에 대한 국민적 염원과 고등교육의 대중화 정책에 따라 1980년대 이후 많은 의과대학이 설립되었다. 그러나 의학교육 기관의 급격한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질적인 성장이 동반되지 못함에 따라 의학교육의 질 관리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1998년 설립된 한국의과대학인정평가위원회(이후 2003년 재단법인 한국의학교육평가원으로 변경)는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전국 41개 의과대학을 대상으로 제1주기 의과대학 인증평가를 시행하였으며, 2007년부터는 제2주기 인증평가를, 2012년부터는 Post 2주기 평가 사업을, 2019년부터는 ASK2019 평가 사업이 진행하고 있다. 의과대학 인증평가제도는 대학 스스로 자체평가를 수행하도록 함으로써 의과대학 스스로 강점과 미비점을 분석하도록 한다는 점, 의과대학의 교육여건과 교육과정의 수준에 대해 사회적 인정을 부여한다는 점, 의학교육과 관계된 이해관계자들에게 교육의 질적인 수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의 의과대학 인증평가 사업은 우리나라 의학교육의 질적인 수준을 한 단계 높였으며, 의과대학들의 사회적 책무성 수행을 강화한 것으로 평가된다(양은배, 2008). 특히, Post-2주기 의과대학 인증평가 기준부터 의료 공공성 강화의 한 측면으로 볼 수 있는 의과대학의 사회적 책무성 수행 기준이 추가되었으며, 모든 의과대학이 교육, 연구, 진료 및 봉사 영역에서 국가와 지역사회의 보건의료서비스 요구를 분석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참여시키며 책무성 수행을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분석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의과대학 인증평가 시스템은 세계적인 추세이다. 세계의학교육연맹(World Federation for Medical Education)은 의학교육의 국제 표준을 발표하고, 각국의 의과대학 인증평가(accreditation) 기구를 인정(recognition)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2023년부터 인증을 받지 않는 대학 졸업자들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연수와 취업을 제한할 예정이다. 우리나라도 의과대학 인증평가를 받지 않은 의과대학 졸업생들은 의사면허국가시험 응시 자격을 부여하지 않기로 하는 법률이 2017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구분 | 제1주기 (2000~2005) | 제2주기(2007~2011) | Post-2주기(2012~2018) | ASK2019(2019) |
총 평가 횟 수 | 50 | 41 | 64 | 10 (진행중) |
완전인증 | 37 | - | - | - |
6년 인증 | - | - | 20 | 1 |
5년 인증 | - | 34 | - | - |
4년 인증 | - | - | 34 | 8 |
3년 인증 | - | 7 | - | - |
2년 인증 | - | - | - | 1 |
조건부 인증 | 13 | 0 | 5 | 0 |
인증 유예 | 0 | 0 | 3 | 0 |
불인증 | 0 | 0 | 2 | 0 |
2. 졸업 후 수련교육제도의 도입과 발전
우리나라 졸업 후 수련교육제도와 관련하여 전문의 제도는 1951년의 의료업자 전문과목 표방허가제를 제도화하는 것에서 출발하였다. 1951년 9월 법률 제221호 국민의료법 제4조의 조항에 따라 정부 주도의 표방허가제로 시작되었고, 1951년 12월 보건부령 제11호인 국민의료법 시행세칙 제34조에는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안과, 이비인후과, 피부 비뇨기과, 정신과, 정형외과, 방사선과의 10개 해당 과목의 전문과로 전문과목을 규정하였으며, 제35조에는 자격취득에 필요한 수련 연한을 5년으로 하여 고시제를 시행하였다. 수련 과정의 의사들은 초기에는 수련의라고 명칭 하였는데 일반인들에게 정식의사가 아니라는 인식을 줄 수도 있다는 지적으로 1976년 4월에 제정된 대통령령 제8088호의 전문의의 수련 및 자격인정 등에 관한 규정이 제정되면서 수련의 대신 전공의라는 호칭이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전문의 제도는 1951년 10개 과목에서 출발하여 1996년 26개 과목으로 증설되었고, 2020년 현재 전문의의 수련 및 자격인정 등에 관한 규정에는 다음 표 3과 같이 26개 전문과목이 규정되어 있으며, 2020년 현재 전문과목별 양성되는 전문의 규모는 표 4와 같다.
·내과, 신경과, 정신건강의학과, 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흉부외과, 성형외과, 마취통증의학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안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비뇨의학과, 영상의학과, 방사선종양학과, 병리과, 진단검사의학과, 결핵과, 재활의학과, 예방의학과, 가정의학과, 응급의학과, 핵의학 및 직업환경의학과 (이상 26개) |

졸업 후 수련교육제도의 정착과 발전을 계기로 의료기술이 수직으로 상승하면서 사회 간접 자본으로서 국가 경제의 성장을 이끄는 발판이 되었다. 전문과목의 전공의 제도는 임상의학 교육의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끌어 냈으나, 이에 따른 의료비 상승과 졸업 후의 추가 교육비 부담, 의료전달 체계의 왜곡 등 부정적인 면도 함께 있었다. 하지만 의대와 의전원 교육을 거친 졸업생 대부분은 전공의 과정을 밟게 되어 의학교육의 심화 과정에서 중요한 위치로 정착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보건의료분야의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치열한 경제 논리로 인한 비인기 과목에 대한 수련 기피, 인기 전공과목의 과열 경쟁, 수도권 편중에 따른 지역 의료인력의 공백, 수련병원에 따른 교육 환경의 차이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또한, 공통역량 교육은 학회 차원에서 산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체계적인 수련이나 평가는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상태이다. 전공의 교육이 모범적으로 정비된 나라에서는 전공의 교육에 필요한 예산을 정부가 지원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 역사적으로 70년 가까이 된 전문의 제도는 의료 공공성 가치 기반 수련이라는 변화하는 의료환경에 맞게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
의료의 공공성 관점에서의 의사양성체제 문제점
우리나라 의사양성체제가 최고의 의료서비스 인력과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의과학 인재를 배출해 왔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최근 사회 전반에 논점이 되는 공공의료 또는 의료 공공성 관점에서 의사양성체제를 바라보면서 몇 가지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하다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1. 의료 공공성에 대한 개념 혼란
일반적으로 ‘개념’이란 여러 가지 물체나 생각을 하나로 묶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개념을 통해서 감각과 사고를 확장하고, 외부 세계와 소통한다. 그렇기에 개념을 정확하게 정의하고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문직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우리가 쉽게 사용하는 공공의료 또는 의료 공공성이라는 개념은 정확한 개념 정의도 공유도 되지 않은 채 사용되고 있다. 이해관계자마다 공공의료의 개념을 다르게 접근하면 갈등과 혼란이 나타난다. 정부를 비롯한 일부 학자들은 공공의료를 공공의료기관이 생산하는 의료활동으로 인식하는 반면, 국제적인 통용성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공공재정으로 생산하는 의료를 공공의료로 인식하고 있다. 공공의료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의 차이는 개념적 인식 차이를 넘어서 공공의료의 정책 수립과 접근 방법의 차이로 귀결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공공의료의 개념 정립을 위한 논의가 활발하지 못했던 이유도 있지만, 비교적 최근까지도 국민과 사회 전반에서 공공 의료기관이 생산하는 의료활동을 공공의료로 생각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이렇게 공공의료를 정의하게 되면 국내 30개 사립 의과대학(10개는 국립 의과대학)수 백여 개의 민간 인턴과 전공의 수련 기관은 공공의료에서 자유로워지게 된다. 그들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공공의료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할 이유가 없다. 그들은 제한적으로 사회사업이나 의료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시혜적 의료활동만으로 충분히 기관의 사명을 다할 수 있다. 반대로 정부 재정으로 제공되는 모든 의료활동을 공공의료라는 개념으로 접근한다면 건강보험의료가 적용되는 대부분의 의료가 공공성을 가지게 되므로 민간 및 국공립 의료기관 모두 의료 공공성에 대한 책무를 갖게 된다.
한편, 공공의료에 대한 개념적 접근에는 한국적 맥락 특수성이 더해져 의료를 이분법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즉, 공공은 좋은 것으로 인식되는 반면, 공공의 반대 개념으로 이해되는 민간은 곧 영리 추구로 귀결된다. 자연스럽게 의사양성체제를 공공의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우는 공공의료와 민간의료가 별개로 존재하므로 공공 의과대학, 공공의료 교육과정을 새롭게 개발하고 공공의료를 담당하는 의료인력을 양성해야 한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지금의 공공의료에 대한 논의가 이러한 프레임 속에 있는지 우리는 주의 깊게 성찰해야 한다. 공공의료라는 개념이 확산하고 폭넓게 인식이 공유되는 경우 의료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 더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어떤 대안적 개념이 존재하는 것일까. 공공의료에 관한 법률 제2조에서 정의하고 있듯이 “공공보건의료"란 국가, 지방자치단체와 보건의료기관이 지역ㆍ계층ㆍ분야와 관계없이 국민의 보편적인 의료 이용을 보장하고 건강을 보호ㆍ증진하는 모든 활동을 말한다.”라는 정의로 충분하다. 이러한 정의에 따라서 공공의료라는 용어보다는 의료 공공성 개념이 더 적합하다. 공공성은 이념상 윤리적으로 ‘사회정의 혹은 공익(public interest)을 포함하고 있으며, 참여와 동의로서의 공공성 이념은 절차적으로 실질적 민주주의를 의미한다(임의영, 2003). 의료 공공성이라는 개념은 국공립 의료기관이나 민간 의료기관이나 관계없이 “국민의 보편적인 의료 이용을 보장하고 건강을 보호ㆍ증진하는 모든 활동”으로 정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념 정의는 국공립 및 민간 의료기관 상호 간에, 그리고 정부, 의료계 및 교육기관 상호 간에 협력적 모델 구축을 가능하게 한다.
2. 전문의 양성 체제의 경직성
우리나라는 1951년 전문과목 표방허가제가 시작되면서 전문과목에 대한 선호 및 우월적 지위에 대한 인식이 급격하게 늘어나게 되었다. 20세기 후반 전국적 현상으로 나타난 고등교육에 대한 열의와 의료기술 및 의과학의 발전에 따른 졸업 후 수련교육에 대한 필요성이 맞물리면서 전공의 수련 과정이 제도적으로 문화적으로 정착되게 된다. 지금은 의과대학 졸업생의 대부분이 졸업 후 수련교육 단계에 진입하고 그들의 대부분이 전문과목 전문의를 취득하고 있다. 다음의 표 5는 2020년 현재 전국 의사면허자 중 전문과목 전문의 현황을 병원 유형별로 나타낸 것이다.

표를 살펴보면 전문과목별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88,717명의 전문과목 전문의 가운데 41,011명(46.2%)이 의원급에 종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전문과목 자격을 취득한 전문의들이 의원급 기관에 종사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나라 의료수요의 많은 부분이 의원급에서 이루어지는 진료 형태를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문의는 특정 전문과목에서 레지던트 수련을 받고 해당 분야의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사람을 의미하며, 자격 취득 후 전문과목과 관련된 의료서비스 제공이 기대되는 의사들이다. 즉, 전문과목 자격을 취득한 많은 의사가 자신들이 수련한 전문과목의 지식과 기술이 적용되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일종의 자격 과잉(over-qualification) 상태로 머물러 있다. 또한, 의원에서 제공되는 의료서비스는 중증, 위급한 질환보다는 만성질환이나 비교적 가벼운 불편감이나 증상을 호소하는 폭넓은 문제들을 다루는 일차 의료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전문과목에서 수련받은 지식과 기술과는 차이가 발생하게 되어 일종의 자격 미달(under-qualification)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지금의 전문의 양성체제는 사회의 의료서비스 요구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힘든 구조이다. 단기, 중장기적 관점에서 어느 정도의 전문과목별 전문의가 요구되고 있는가에 대한 분석이 미흡하고, 전문과목별로 배정된 정원은 무너질 수 없는 두꺼운 장벽이 되고 있다. 이러한 전문의 양성체제의 경직성 속에서는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한 미래지향적 계획과 실천에 한계가 있다.
3. 의료서비스 접근성 강화를 위한 정책의 부재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한 핵심 과제 중의 하나는 지역의 의료접근성과 의료의 질을 향상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의료인력과 의료시설 즉, 시도별, 수도권 및 비수도권, 대도시, 중소도시 및 농어촌 등으로 구분하여 인구 1,000명당 의사 수, 외과계 전문의 수, 간호사 수, 병원 수, 요양병원 수, 병상 수 분포를 비교한다. 조병희(2018)의 연구에 따르면, 의료인력과 의료시설은 모든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며, 의사, 외과계 전문의, 간호사 등 의료인력의 서울 집중이 심화하고 있다. 특히, 외과계 전문의의 지역 간 불균형이 심화하고 있다. 병원 수, 요양병원 수, 병상 수는 비수도권과 농어촌에 더 많이 분포되는 경향이 있다. 최근 대도시의 병원 수가 증가하고 중소도시 및 농어촌의 병원 수가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다음 그림 1의 (a)는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를 비교한 것이며, (b)는 인구 10,000명당 외과계 전문의 수를 비교한 것이다.
이러한 통계를 근거로 한다면 지역의 의료서비스 접근성과 의료의 질 향상이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통계자료가 해석할 수 없는 사회 문화적 맥락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그것은 국민의 의료 이용 의사결정에는 다양한 측면이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첫째는 대중교통의 발달이 사회 전반적으로 의료의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였다는 점이다. 우리는 전국 어디에 살고 있든지 1~2시간 이내에 상급 의료기관에 접근할 수 있게 됨으로써 대도시, 중소도시 및 농어촌의 구분이 큰 의미가 없게 되었다(물론 여전히 더 많은 시간이 요구되는 지역이 있기는 하다). 둘째는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인구 밀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인구 밀도가 높을수록 의료서비스 접근성은 높아진다. 넓은 국토 면적을 가지고 있는 국가들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작은 국토 면적에 좁은 지역에 인구가 밀집해 있다. 따라서 지역의 의료서비스 접근과 질적 수준에 대해서는 새로운 개념 적용이 필요하다. 셋째는 의료를 소비하는 국민의 심리적 문화적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국민은 더 좋은 의료기관, 더 훌륭한 의사에서 진료받고 치료받기를 원하고 있다. 때에 따라서는 두세 곳의 상급 종합병원에서 교차 진료를 하는 예도 있다. 이러한 심리적 문화적 요인은 지역의 의료접근성 문제가 다른 차원에서 접근되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지역별 의료시설과 의료인력이 어느 정도 균형을 갖추어야 할 필요성은 있다. 적정 균형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지역 의료기관들이 지역의 의료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최소한의 전문과목별 의료인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점은 개선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역별 의료인력과 시설의 불균형을 결과론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지역의사 제도, 공중보건의사 제도, 지역균형 인재 선발과 같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낯설게 느껴지는 제도들을 거론하고 있다. 결과론이 아니라 현상학적 관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현상학적 관점에서 지역별 의사분포가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하다. 그것은 의사로서의 사명이나 수익의 문제를 넘어서는 일이다. 지속적으로 자신의 지식과 기술을 향상할 수 있는 자기발전의 기회가 있는가, 그들이 속해 있는 사회 문화적 환경은 어떠한가, 가족들과의 삶의 질은 어떠한가, 자녀들의 학업과 미래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등 너무도 많은 요인이 지역별 의사 인력의 균형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요인들을 기초로 지역별 의사 인력 균형을 유지하고, 의료 공공성을 강화하려는 유인과 정책 개발이 필요하다.
4. 의사양성체제 전반에 의료 공공성에 대한 가치 교육 부재
의과대학과 전공의 수련교육 단계의 교육과정을 들여다보면, 학생과 수련의들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한 의학지식, 술기 및 의사로서의 태도를 학습한다. 의과대학에서 의학의 토대가 되는 기초 및 임상의학 지식, 그리고 임상 실습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인턴과 레지던트 수련 과정에서도 질병의 진단과 치료를 위한 지식과 술기 함양이 핵심이 되었다. 의과대학의 일부 과목에서 공중보건, 역학, 보건정책 및 관리 등이 교육되기는 하였지만, 의과대학에 개설된 수많은 과목 중의 하나였다. 전공의 수련 과정에서도 의료 공공성에 대한 교육이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의과대학과 전공의 수련 과정과는 별개로 공공보건의료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다음의 표 6은 우리나라 공공보건의료 교육과정 개설 현황을 나타낸 것이다. 표에서 제시하고 있는 공공보건의료 의사역량 개발을 위한 교육과정은 이러한 영역에 종사하거나 종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역량 개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이 퍼지어가고 있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지만, 의과대학과 전공의 수련교육 단계에서 의료 공공성 또는 공공보건의료 관련 역량을 함양하기 위한 교육과정이 체계적으로 개발되고, 교육되지 못한 점은 아쉬운 점으로 남아 있다. 즉, 의사양성체계 속에 의료 공공성에 대한 가치를 함양하고, 관련 역량을 함양하는 것들이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개설기관 (명칭) | 대상 | 교육 기간(시간) | 특징 |
국립중앙의료원(2018 공공보건의료최고위정책과정) | 공공보건의료에 관심있는 문들 | 9회(각 80분)9-11월 | 우리나라 최초의 공공보건의료 관련 교육(2010-2018년)무료 |
대한예방의학회(2019 지역사회 공중보건최고리더과정) | 보건소장, 공공보건의료기관장, 중앙정부/지자체 보건분야 사무관 이상 등 | 14회격주 토요일4~11월 | 해외연수과정 포함아카데미하고 심화의 성격수강료 200만원 |
서울특별시(2019 공공의료아카데미) | 시립병원 및 보건소직원 | 4~11월 | 직급별 교육직무교육+인문학적 소양의 교양 포함 |
서울의료원 (2019) | 직급별 모집(원장, 진료부장, 기조실장) | 2일 | 2019년 시작직급별 맞춤형 단기교육과정 |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공공보건의료역량강화아카데미) | 지역거점 공공병원에 근무하는 임상의사(보직자참여 구너장)를 포함한 모든 직종 | 8시간 교육 | 2016년 중단 |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2016, 2017, 208 보건의료행정고위자 과정) | 공고보건의료기관에 종사하거나 진출하고자하는 의사 | 1기: 12회2기: 15회3기: 10회 | 보건의료행정 중심의 교육내용3기부터 새로운 주제 및 교육방법 시도 |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한 의사양성체제 발전 방향
의료 공공성 강화 방안은 의료전달체제, 건강보험급여, 공중보건정책, 의사양성체제 등 여러 가지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정책들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상호작용 관계가 있지만, 의료 공공성에 대한 가치관을 내재화한 역량 있는 의사를 양성해야 한다는 명제 또한 분명하다. 그렇다면 의료 공공성을 강화하는 의사양성체제는 어떤 것일까. 많은 전문가가 현재의 의사양성체제가 가진 문제 인식에서 새로운 발전 방향을 제안하고 있다. 이러한 제안들이 어느 정도 타당성을 갖고 있으며, 어떤 것들은 실행되어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 제시하는 의사양성체제 발전 방향이 완전히 새로운 제안은 아니다. 우리는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한 다양한 관점을 제안할 수 있고, 그러한 다양성은 더 좋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 우리의 사고를 확장해줄 것이다.
의사양성체제와 관련된 통일된, 연합된 거버넌스 구축
의사양성이 의과대학 교육으로 완성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학생들은 의과대학을 졸업하는 시점에서 의사국가시험을 치르고 의사 자격을 취득하기는 하지만, 졸업생의 95% 이상이 인턴과 전공의 과정을 거치면서 실제 환자 진료 능력을 갖춘 의사로 성장한다. 즉, 의사양성체제는 의과대학 교육으로부터 시작해서 인턴과 레지던트 수련교육으로 불리는 졸업 후 의학교육을 통해 완성되고, 의사로서 활동하는 평생 지속적 전문성 개발이 요구되는 과정이다. 이것은 의사양성체제가 의과대학 교육, 졸업 후 수련교육이라는 연속 선상에서 통합적으로 계획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의과대학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와 전공의 수련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대한의학회, 그리고 평생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대한의사협회가 의사양성이라는 큰 틀에서 유기적인 협의를 충분히 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연계성 부족은 의과대학 교육과 관련된 정책은 교육부, 전공의 수련교육 및 평생교육과 관련된 정책은 보건복지부에서 수립하고 집행하는 근본적인 문제로부터 기인한다. 이러한 거버넌스 체제에서는 의료 공공성에 대한 가치 함양과 교육은 분절화 될 수밖에 없다. 의료 공공성에 대한 가치를 함양하고 관련된 역량을 함양하기 위하여 의사양성체제 전반에 걸쳐서 프로그램의 기획, 실행, 모니터링 및 평가를 결정하고 실행하는 연합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다.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한 교육 및 수련 프로그램 개발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한 교육 및 수련 프로그램의 구체적 내용을 개발해야 한다. 프로그램 개발의 본질적 요소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왜 그것을 가르쳐야 하는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그 결과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의 순환적 과정이다. 의과대학 교육이나 전공의 수련 과정에 의료 공공성 강화라는 명분을 빌어 관련 과목이나 세미나를 몇 개 만드는 것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이런 방법으로는 의사 개개인이 의료 공공성 가치를 내면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과정 또는 교육프로그램 개발의 절차(요구조사-목적과 목표설정-내용선정과 경험의 조직-실행전략-모니터링과 평가-피드백)에 따른 체계적인 개발이 필요하다. 의료 공공성 강화와 관련한 교육내용을 인지적, 정의적, 심동적 영역으로 구분하거나 졸업 성과(Graduate Outcomes), 전문가위임가능행동(Entrustable Professional Activities, EPA)의 형태로 개발할 수도 있다. 교육과 수련단계별로 마일스톤(milestone) 개념이나 캡스톤(capstone) 개념을 도입할 수도 있다.
의학교육의 새로운 축으로서의 의료시스템과학의 개념도 의료 공공성 강화와 연결되어 있다. 의료시스템과학(Health Systems Science)은 미국의사회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인데, 의료시스템의 대상인 인구집단과 환자에게 수준 높은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향상된 성과를 추구하며, 동시에 비용 효과적인 의료전달체계 구축과 관련한 원칙, 방법 및 실천을 의미한다(Skochelak et. al., 2020). 의료시스템과학은 보건의료시스템 내에서 교육 훈련받고 진료를 제공하게 될 의료인들에게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시각으로 환자와 지역사회 인구집단의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대한민국의학한림원, 2018). 이러한 의료시스템과학은 기초의학, 임상의학의 이분법적 구분에 더하여 의학교육의 제3의 축으로 성장하고 있다. 의료시스템과학은 의학교육의 고전적인 패러다임으로는 제한된 의료자원 속에서 사회가 추구하는 양질의 의료와 건강증진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미래의 의료인은 의료전달체계 속에서 환자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분석하고 조망하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의학교육에 의료시스템과학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점에서 의료시스템과학은 의료 공공성 가치 구현과 실천 역량 함양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의사양성체제 속에서 의학교육의 기본 패러다임으로 기초의학, 임상의학과 동일한 수준에서 의료시스템과학이 논의되어야 한다. 다음의 그림 2는 의료시스템과학 교육과정의 세 가지 영역과 주제를 나타내고 있다.
의과대학에서 의료 공공성에 대한 가치와 실천 역량을 함양하기 위한 새로운 교육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새로운 평가 결과를 만든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의사국가시험, 병원의 인턴, 전공의 선발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의학교육의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의사들에게 요구되는 의료 공공성 구현 관련 역량이 의과대학 교육에서는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전공의 수련교육에서는 별로 중시되고 있지 않은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 두 단계의 교육프로그램이 유기적으로 연계되는 것이 중요하다.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대한의학회, 대한공공의학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의료 공공성 가치 구현을 위한 교육위원회’부터 시작해도 좋은 방법이다.
전문의 자격제도의 유연성 및 평생교육 모형의 개발
앞에서 의사양성체제의 경직성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의과대학 졸업생들은 대부분 인턴 과정을 거쳐 26개 전문과목을 선택해서 레지던트 수련을 받고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다. 매년 전문과목별로 정원이 배정되어 있으며, 약간의 지원율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과목별로 알아서 분산된다. 레지던트 선발 정원이 매년 그렇게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내과학, 외과학 등이 수련 기간을 3년으로 단축하고, 대부분의 전문과목이 역량 중심의 수련 교육과정 개발을 하는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변화의 속도는 빠르지 않다. 전통적인 전문과목 분류는 의학의 학문체제에 따라 분류된다. 그런데 이러한 학문의 분류는 시대 변화에 따라 분화되거나 통합되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는 더 전문적인 영역으로 분화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해서는 전문화가 아니라 전문분야의 통합이 필요하다. 기존의 2~3개 전문과목이 새로운 하나의 전문과목으로 통합될 수도 있어야 한다. 의학의 학문분류 체계가 아니라 의료서비스의 요구에 따른 전문과목 체제를 검토할 시점이다. 새로운 자격제도의 신설, 기존 제도의 변경 및 폐지가 더 융통성 있게 이루어져야 한다. 전공의 수련 과정을 모듈형으로 전환하고 역량에 근거해서 복수의 전문의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고 의료서비스에 종사하고 있는 기성 의사들도 사회의 의료서비스 요구에 부응하여 새로운 영역의 전문과목 전문의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평생교육 모형도 개발되어야 한다. 공중보건, 필수의료, 지역의료 등 사회 전반에 필요한 의료수요에 언제든지 대응할 수 있는 융통성 있는 의사양성체제가 개발되어야 한다.
맺음말
세상은 변했다, 과거보다 더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그러나 의과대학과 전공의 수련교육은 보수적 관점을 유지하고, 안정을 추구하고 있다. 란셋의 편집장이었던 리차드 호튼(R. Horton)은 의학교육이 기본적으로 보수적이어서 구세대의 실패한 방법이 그대로 신세대에게 주입되었고, 우리는 사회적으로 용인된 안전한 전통에 안주해 왔다고 비판했다(Horton, 2010). 일부 변화의 목소리와 개선이 일어나고 있지만, 현재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대안을 마련하는 수준이거나 효율성을 추구하는 수준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한 의사양성체제는 전통적인 프러시안 교육모델, 플렉스너 교육모델을 뛰어넘어야 한다. 의사양성의 목적은 의학지식과 기술을 다음 세대 의사에게 전수해 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갈, 그리고 의료 공공성을 실현하는 의료, 의학 분야의 변화 촉진자를 길러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거버넌스 구축, 프로그램의 개발, 새로운 의사양성체제 모델이 필요하다. 또한, 의사양성체제 재설계를 위한 의료환경, 의료제도, 의료전달체계 등의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여러 이해관계자의 요구를 반영한 한 중장기 보건의료정책이 바탕이 되어야 하고,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역할 분담이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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