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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력 수급 추계와 의사결정 거버넌스​

최종 수정일: 5일 전

 

양은배 (2024). 의료인력 수급 추계와 의사결정 거버넌스. 계간 의료정책포럼 22(2): 32-37


들어가며


의사 인력 부족과 필수의료 기반 확충을 명분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 정책과 필수의료 패키지는 인내하기 힘든 사회적 혼란과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였다. 이 혼란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의사 부족의 근거로 제시한 추계결과와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이해관계자 상호 간의 신뢰도 무너졌다.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 의료계가 제안한 대안적 방법을 외면하고 전문의 배출까지 오랜 기간이 소요되는 의과대학 입학정원 대규모 증원을 결정한 정부의 의도를 알 수 없다. 과정은 공정하지 않았으며 이해력, 판단력, 사리 분별력으로 표현되는 우리의 상식은 깨졌다.

문제의 출발은 보건의료 발전 종합계획 부재와 의료인력 수급 정책을 다루는 관리형 거버넌스이다. 많은 전문가단체가 의료인력 수급 정책을 다루는 새로운 거버넌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의료인력 수급 추계결과에 대한 수용성을 높이고, 사회적 갈등을 줄이기 위해 인력 수급 추계·조정시스템을 구축한다는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 발표는 진일보한 것이다(보건복지부, 2024). 정부가 발표한 거버넌스는 의료인력 수급 추계를 담당하는 「의료인력수급추계센터」를 보건사회연구원 산하에 설치하여 3년마다 추계를 하고, 추계 모형 설정, 추계결과 검토, 그리고 정책을 제안하는 「수급추계전문위원회」를 공급자 추천 과반수로 구성하여 운영하며, 의사결정 기구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과정에 추계 관련 자문이나 추계결과 및 정책 제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는 「직종별 자문위원회」를 운영하는 것이 골자이다. 의료인력 수급 추계와 의사결정 거버넌스를 단기간에 완전하게 구축하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의료인력 수급 추계·조정시스템이 사회와 의료계의 신뢰를 바탕으로 건설적으로 기능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협의와 합의에 기반한 의사결정 거버넌스

의료인력 수급 정책 관련 이해관계자가 의사결정 거버넌스 의미에 대해 공통의 인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거버넌스는 영어 단어 ‘governance’를 외래어 표기법 또는 관용 표기에 따라 사용한 단어이다. 단어의 생명은 정확성과 소통성이다. 단어가 정확하면 소통성은 비례하여 올라가므로 정확성이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거버넌스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밥 제섭(Bob Jessop)은 전통적인 행정학 패러다임의 거버넌스 개념을 버리고 대화와 타협에 더 큰 가치를 두는 신-거버넌스(the new governance) 개념을 설명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날 거버넌스 단어에 가장 잘 부합하는 개념은 협의와 합의이다. 존 피에르(Jon Pierre)와 피터스(B. Guy Peters)는 정부 주도의 통제와 관리에서 벗어나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주체적인 행위자로 협의와 합의 과정을 통하여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해 나가는 사회적 통치 시스템을 거버넌스로 정의하였다. 이러한 개념을 이해하고 공유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이다. 그러나, 이번 정부 발표는 협의와 합의의 주체가 되는 직종별 위원회를 자문위원회 성격으로 격하하였으며, 최종 의사결정 권한은 전문가단체의 의견이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인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에 부여하고 있다. 사실상 앞서 설명한 협의와 합의 개념을 전제로 하는 거버넌스가 보이지 않는다. 김혁(2015)은 정부의 관료가 전문지식과 정보를 독점하고 선별하며 스스로 전문성을 강화하여 절대적 권력의 원천을 확보하는 것을 경계하였다. 지금의 의료인력 수급 정책 의사결정 거버넌스는 절대적 권력에 의한 관리와 통제의 개념으로 이해될 여지가 있다. 중요한 것은 절차적 명분을 위한 형식적 과정이 아닌, 다양한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렴하고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여 합리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이다.

 

과학적 근거를 생산하는 인프라

의료인력 수급 정책을 몇 가지 지표나 사회적 정서에 의존하기보다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을 것이다. 근거는 그것이 ‘옳음’을 뒷받침하는 사실이나 이치를 의미한다. 현존하는 모든 자료를 체계적으로 검토해서 합성하는 체계적 고찰, 정책의 경제적 영향을 평가하는 경제성 분석, 어떤 정책이 더 효과가 있는지를 연구하는 비교 효과 연구 등이 과학적 근거를 생산하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보건의료 분야는 노동집약적이며, 모데카이 이즈키앨(Mordecai Ezekiel)이 말한 포크 사이클(Pork Cycle, 시장 변화에 대한 지연된 반응의 결과로 과잉과 부족이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패턴)의 특징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의료인력의 부족과 과잉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주기적으로 생산해 내는 일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는 OECD 자료, 의료인력 수급 추계 보고서 등 일부 자료를 제외하고는 의료인력 수급 추계와 관련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고찰, 정책의 경제성 분석, 대안 정책에 대한 비교 효과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필요에 따라 특정 연구자의 몇몇 연구가 과학적 근거를 대표하였을 뿐 과학적 근거를 생산하는 인프라가 없었다. 그들의 연구가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나라에는 의료인력 수급 추계와 정책을 제안하는 인프라가 미흡하다는 의미이다. 정부는 단기적으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산하에 의료인력수급추계센터를 설치하여 의료인력 수급 추계를 시행하고 중장기적으로 미국의 보건의료자원서비스청(HRSA) 또는 프랑스의 국립보건전문직인구통계관측소(ONDPS)와 같은 기구를 추진한다고 하니 그나마 반가운 일이다. 그럼에도 의료인력수급추계센터를 정부 출연기관 산하에 둔다는 점에서 민관 합동의 독립기구 설치를 요구하는 의료계의 인식과 괴리가 있다. 조직의 인적 구성, 예산 등이 명확하지 않아 과학적이고 종합적인 근거를 지속해서 생산해 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외국의 경우 과학적 근거를 생산하는 기구를 정부 산하에 두고 있다. 그러나 정부에 대한 의료계의 신뢰가 부족한 우리나라 맥락에 정부 산하에 과학적 근거를 생산하는 기구를 두는 것은 또 다른 갈등의 요소가 될 수 있다. 과학적 근거에 대한 신뢰성과 수용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구분

미국

네덜란드

프랑스

명칭*

NCHWA

NIVEL

ONDPS

설립

2010년 보건인적자원부 보건의료자원서비스청 산하

1965년 보건복지스포츠부 산하

2002년

보건부 산하

역할

HRSA 다른 부서와 협력하여 보건 인력에 대한 종합적인 데이터 수집·분석 및 보고, 보건 인력과 관련된 정책 개발 지원

보건 정책, 의료 제공 및 보건 서비스에 대한 자료 수집과 분석, 일차 의료, 만성 질환, 정신 건강 등의 분야 포괄

보건의료 인력의 인구통계 및 관련 정책 모니터링,

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보건부와 다른 관련 기관에 정책 제언

조직

책임자

데이터 분석·연구팀

정책·프로그램 지원팀

행정 및 운영 지원팀

협력·커뮤니케이션팀

이사회

연구부서

데이터 관리·분석팀

프로젝트 관리팀

지원 서비스팀

커뮤니케이션·지식전파팀

협의회

작업 그룹

연구·분석팀

행정팀

인력

전문가 10~20명

연구자 110명

직원 60명

미공개

수십 명 예상

주*

HRSA: Health Resources and Services Administration; 공공보건과 의료서비스 접근성 개선 목적 (2~3,000명)

ONDPS: Observatoire National de la Démographie des Professions de Santé

NCHWA: National Center for Health Workforce Analysis

NIVEL: Netherlands Institute for Health Services Research




 

 

전문가 의견 존중

어떤 사람은 의사결정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민주주의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다른 사람은 전문가의 지식과 경험이 의사결정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전문가주의를 주장한다. 전자는 후자와 대립과 긴장의 관계에 놓여 있다. 정부는 의료인력 수급 관련 의사결정에 정부, 소비자, 공급자, 그리고 전문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민주주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전문가단체는 의료인력 수급 관련 의사결정은 수많은 불확실성과 가치의 상충이 있으므로 올바른 결정을 위해서 전문가 중심의 의사결정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해답은 전문성과 민주성 사이의 그 어느 지점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료인력 수급 관련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의료계 전문가를 여러 이해관계자의 한 명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들은 우리나라 의료와 의료인력 수급과 관련한 쟁점을 가장 잘 인식하고 해결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풍부한 경험을 가진 현장 전문가이다. 또한, 의료계에 종사하는 전문가 대부분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준수하고 국민의 안녕과 환자의 회복을 먼저 생각하는 이타적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이다. 비록 소수의 사람이 다른 시각으로 의료인을 바라볼지라도 국민 대부분은 의사를 신뢰하고 자신을 맡긴다. 이런 이유로 의료인력 수급 정책을 자문하는 일본의 의사인력수급분과회, 네덜란드의 의료인력계획자문위원회(Advisor Committee for Medical Manpower Planning), 호주의 의료인력개혁자문위원회(Medical Workforce Reform Advisory Committee)는 전문가주의 개념에 기초하여 위원의 상당수를 의료계 전문가로 구성하고 있다(일본 22명 중 의사 위원 16명; 네덜란드 27명 중 의료 전문가단체, 의학교육 기관, 보험자 단체 각 9명; 호주 의료 및 학계 전문가, 의학교육 기관, 그리고 의료 관련 협회 대표 등이 절반 이상). 이처럼 전문가 의견이 중요하게 반영되는 거버넌스가 구축되어야 한다.

 

투명한 의사결정 과정과 책임 의식

투명해야 공정하고, 공정해야 투명할 수 있다. 투명성의 핵심은 의사결정에 사용한 자료와 논의 과정을 있는 그대로 공개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의료인력 수급정책과 관련된 자료, 논의 과정, 그리고 의사결정 회의록이 투명하게 공개되었는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의료인력 인력 수급 추계에 관한 연구가 비공개로 처리되거나 의료인력 수급 정책 의사결정을 위한 회의자료와 회의록에 대한 접근이 제한된 경우가 많았다. 정부 관계자는 회의록 작성 의무가 없다고 말한다. 회의자료 또는 회의록이 파기되었다고도 말한다. 어느 시점에 어떤 자료를 공개해야 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투명성은 이해관계자 상호 간에 신뢰 구축, 협의와 합의를 만들어 가는 출발점이다. 일본의 의사수급분과회가 2015년 이후 40여 차례의 모든 회의자료와 회의록을 온라인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는 점은 우리와는 너무 상반된다. 투명성은 책임 의식을 높이고 신뢰를 형성하는 좋은 방법이다. 잘못된 의료인력 수급 정책은 의료비 증가를 포함하여 사회 경제적 영향력이 매우 크다. 그렇기에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모든 이해관계자는 의사결정에 따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의료인력 수급정책과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전문성이 떨어지거나 신념과 사명감이 부족한 사람이 종종 있다. 이들은 의사결정의 결과에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미래의 어떤 시점에 의사결정의 결과에 책임을 갖는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의사결정을 위한 정확한 정보를 수집하고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여 신중하고 논리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며, 그러한 결정을 다양한 이해관계자 및 사회와 공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신념과 사명감을 가지고 의사결정의 결과가 성공적일 수 있도록 지속해서 노력해야 한다. 의료인력 수급 정책에 관한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이해관계자는 이러한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나가며

의료인력에 대한 수요와 공급은 인구집단의 특성, 진단 및 치료 기술의 발전, 그리고 국가의 의료정책과 의료전달체계 등 국가의 보건의료 발전계획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렇기에 의료인력 수급 정책은 종합적이고 중장기적인 보건의료 발전계획의 맥락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그리고 의료인력 수급 정책 의사결정 거버넌스 관련 국가 수준의 역량 구축을 제안한 세계보건기구의 언급과 EU에서 발간한 의료인력계획방법론에서 강조한 이해관계자의 참여와 합의 중요성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WHO, 2016; Malgieri et al., 2015). 의료인력 수급 정책의 효과는 지금과 다른 의료환경일 수 있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평가될 것이기에 불확실성을 전제로 한다. 불확실성은 값비싼 실패(costly failure)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에 근거에 기반하고 전문가 의견이 반영되는 탄탄한 민관협력 거버넌스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거버넌스는 의료인력 수급 추계와 관련한 의사결정을 뛰어넘어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의료인력 양성, 지원 및 관리를 위한 거버넌스가 되어야 한다.

 

 

참고문헌


김혁 (2015). 거버넌스적 접근을 통한 관료통제에 대한 연구: 부패방지 체계로서의 청렴 거버넌스 구축을 중심으로. 한국정당학회 14(2), 257-282.

대한의사협회 (2024.8.16). 일본 의사 수급 정책 논의 현황 및 시사점. 의료정책연구원 이슈브리핑 8호.

보건복지부 (2024.8.30).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의료개혁 1차 실행방안 발표. 보건복지부

Greuningen MV, Batenburg RS, Van der Velden LF. (2012). Ten years of health workforce planning in the Netherland: a tentative evaluation of GP planning as an example. Human Resources for Health. 2012;10:21. doi:10.1186/1478-4491-10-21.

Jessop B. (2000). Governance Failure in G. Stoker(ed.), The New Politics of British Local Governance, 11-32. St. Martin Press.

Pierre JB, Peters G. (2000). Governance, Politics, and the State. St. Martin's Press.

Malgieri A, Michelutti P, Van Hoegaerden M. (2015). Handbook on health workforce planning methodologies across EU countries. Joint Action Health Workforce Planning and forecasting.

World Health Organization (2016). Global strategy on human resources for health: Workforce 2030. W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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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sei University  College of Medic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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