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교육 이해하기: 통합성과 연속성의 관점에서
- ynara2511
-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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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4월 7일
양은배 (2021) 의학교육 이해하기: 통합성과 연속성의 관점에서. 이수곤 외 (편). 의과대학에서 교수하기.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22-30쪽
교수의 관심 영역을 생각해보면, 의과대학에는 크게 세 그룹의 교수가 있는 것 같다. 첫째는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기 위해 밤낮으로 연구에 전념하고,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데 보내는 교수들이다. 둘째는 끊임없이 자신의 지식을 새롭게 하고, 이러한 지식이 환자 진료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고민하는 교수들이다. 마지막은 의학지식과 기술을 학문후속세대에게 교육하며, 그들에게 희망과 도전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고민하는 교수들이다. 어떤 교수는 지식의 모든 분야(지식의 생산, 적용 및 전달)에 관심을 갖고 있는 반면 다른 교수는 특정 분야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거나 아예 관심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의학 지식의 생산과 적용뿐만 아니라 이러한 것을 다음 세대에게 전수하는 것은 교수의 기본적인 책무이다. 의과대학 교수는 학생, 인턴, 전공의, 강사 등 일련의 수련 과정을 거치면서 연구와 진료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였으며, 자신이 전공하는 분야의 진료에 대해서는 언제, 어디서든지 거침없이 전문성을 발휘한다. 그러나 교육은 상황이 다르다. 의과대학 교수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고, 어떻게 가르쳐야 하며,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기술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학생에게 교육자로서의 역할 모델도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학교육의 기본적인 특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의학교육,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은 하나의 개념이다
우리는 종종 가르치는 일과 배우는 일을 분리해서 생각한다.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지만, 학생이 무엇을 배우는가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드레슬과 마커스(Dressel & Marcus)는 우리가 얼마나 잘 가르쳤느냐의 문제는 학생들이 무엇을, 얼마만큼 배웠는가의 맥락에서만 정의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교수(teaching)와 학습(learning)은 수단과 목적으로서 상호보완적이고, 복합적인 상호작용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므로 두 개념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많은 의과대학 교수가 잘 가르치기 위해서 헌신적인 노력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왜 ‘교수(가르침)=학습(배움)’이라는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교수에 의한 교육(계획과 실행)과 학생 경험의 불일치라는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계획을 수립한다. 즉, 강의 또는 임상실습 교안을 작성한다는 의미이다. 그러고 나면, 이렇게 만들어진 교안을 토대로 교육을 실행하는데 이것을 수업, 강연, 실습 또는 교안의 실천이라고 부른다. 일차적인 불일치는 교안의 작성과 실행 사이에서 일어나는데, 계획과 실행의 일치 정도는 교수의 교육적 역량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불일치는 교수의 교육과 학생 경험 사이에서 일어난다. 학생은 교수의 의도와 관계없이 자신의 경험과 이해의 틀 속에서 제한적인 학습을 할 뿐만 아니라, 학습한 내용도 망각하거나 행동의 변화로 연결되지 않는다. 교수가 체계적인 교육계획을 가지고 강의실 또는 임상교육 현장에서 탁월한 교육 활동을 했더라도 학생 경험의 관점에서 행동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학습이 일어났다고 보기 어렵다. 의학교육은 학생이 무엇을 배웠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의학교육, BME-GME-CPD의 연속선상에 있다
우리는 의학교육을 말할 때 의과대학의 학생교육을 염두에 두는 경향이 있다. 의학교육에 관련된 많은 논의가 학생 교육에 대한 것이기에 그리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의학교육을 의과대학 교육으로 국한한다면 의학교육의 본질을 전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의과대학을 졸업하면서 의사면허를 받기는 하지만 그들이 유능한 역량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기에 인턴, 전공의 수련과 같은 졸업 후 교육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의학교육은 의과대학에서 이루어지는 기본의학교육(basic medical education, BME), 졸업 후 교육(graduate medical education, GME) 및 평생교육으로 불리는 지속적 전문성 개발(continuous professional development, CPD)을 통칭하는 용어이다. 의학교육이 의과대학 교육 단계에서 완성되지 않고, 졸업 후 수련교육을 통해 완성되고 지속적인 자기개발의 과정을 통해 유지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 이견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의과대학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와 전공의 수련교육과 관련되어 있는 대한의학회와 대한병원협회, 그리고 평생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대한의사협회가 의학교육이라는 큰 틀에서 유기적인 협력을 충분히 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연계성의 부족은 의과대학 교육과 관련된 정책은 교육부, 전공의 수련교육 및 평생교육과 관련된 정책은 보건복지부에서 수립하고 집행하는 근본적인 문제로부터 기인한다. 성과바탕 교육과정 개발과 적용, 의사면허와 자격의 개념과 구분, 의학교육 단계별 역량 평가방법 등 의학교육의 연속성 관점에서 논의되어야 할 많은 과제가 있다. 의학교육은 BME-GME-CPD의 연속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의학교육, 교육-연구-진료의 통합적 접근을 요구한다
의과대학 교수 가운데는 교육, 연구와 진료를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학생과 전공의 교육은 교수에게 주어진 하나의 책무로 인식되고, 연구는 자신이 전공하는 분야의 미래 경력개발을 위한 과정이거나 넘어야 하는 일종의 허들이다. 진료는 일종의 서비스이며 봉사이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을 조금만 틀어 보면, 연구를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의학 지식을 생산하고, 이러한 연구 결과를 환자 진료에 적용하며, 교육을 통해 학문후속세대에게 전수되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교육-연구-진료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된 일종의 생명체이다. 그런 점에서 아와스디(Awasthi)는 교육과 연구가 뒷받침되지 않은 진료는 의학지식과 기술의 정체를 야기하며 국가 경쟁력이 뒤처지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의학교육에 있어서 교육, 연구와 진료의 융합과 연계를 설명하는 한 단어는 ‘아카데믹 메디신(academic medicine)’이다. 아카데믹 메디신의 개념은 비교적 최근에 소개되었는데, 양은배와 맹광호는 ‘대학의학’으로 개념을 소개하고 필요성을 주장한바 있다. 미국의과대학협회 회장을 역임했던 커치(Kirch)는 아카데믹 메디신의 개념과 목표가 없이는 한 나라의 보건의료문제나 국민의 건강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우리나라는 아카데믹 메디신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과대학은 의과대학대로, 병원은 병원대로, 그리고 전문 학회는 학회대로 제각기 활동을 해온 것이 현실이다. 각 관련 단체들 간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는 의료계 전체의 발전은 물론 서로의 힘을 약화시켜온 점이 없지 않다. 우리나라도 어떤 형태로든지 아카데믹 메디신을 창출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관련 여러 단체가 의료 인력의 교육과 훈련, 그리고 연구에 힘을 모아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의료 시스템 구축과 운영에도 주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학교육도, 보건의료 시스템도 정부의 계획에 따라 수시로 변화해야 하고 그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인적 비효율성의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일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의학교육은 아카데믹 메디신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의학교육, 시스템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이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 말한다.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인공지능, 가상현실,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생활 속에 파고들고 있다. 리처드 서스킨드(Richard Susskind)와 대니얼 서스킨드(Daniel Susskind)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전문직의 미래(The Future of the Professions)」라는 책에서 현재의 전문직 개념이 해체될 것이라고 하였다. 의료를 포함한 우리 사회 전반에서 인간의 인지, 감정, 작업, 윤리적 능력은 상당부문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이다. 의학과 의료가 빠르게 변화되는 것만큼이나 의학교육도 새로운 도전 과제가 끊임없이 생겨난다. 통합교육, 역량바탕교육, 학생중심교육, 문제중심학습, 팀바탕학습, 플립러닝, 근거중심 의학교육, 임상실습 교육, 객관구조화진료시험과 진료수행평가, 의학교육에서 시뮬레이션 활용, 수행평가, 포트폴리오, 의학 직업전문성, 의사 정체성, 환자-의사 간 의사소통, 교수개발, 전문직 직종 간 교육, 학생 선발, 졸업 후 수련교육, 교육과정 개발과 평가, 지속적 질 관리 등 의학교육에 던져진 주제만 나열해도 지면을 모두 채울 정도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성찰적 역량이 조금만 있다면 의과대학 교육이 얼마나 체계적이지 못한지 금방 알 수 있다. 학생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혼란스럽고, 학생이 졸업하는 시점에서 무엇을 할 수 있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지식 중심의 일방적 강의는 계속되고, 임상실습은 여러 가지 이유로 내실화가 어렵다. 학생은 진짜 공부를 하기보다는 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족보 중심의 학습을 하는 것이 오래된 관행이다. 협력보다는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30년 동안 끊임없이 교육과정을 개선하고, 새로운 교육방법과 평가방법을 도입하여 더 좋은 의학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 달려왔음에도 좀처럼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의학교육을 통해 그토록 유능한 의사가 배출되고 있는 것은 기적이다. 시스템이 문제이다. 첫째는 의학교육이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교육에는 교육과정, 교육방법, 학생평가, 가르치는 사람, 배우는 학생, 교육시설 그리고 교육비 등 다양한 요소가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어떤 하나의 요소를 변경하거나 혁신한다고 해서 우리가 의도하는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학생의 학습문화와 평가제도를 혁신적으로 개편한 경우에도 학생들은 자기주도학습을 하기보다는 여전히 주입식 강의와 족보 중심의 암기식 공부를 한다.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둘째는 의학교육이 생산적인 시스템 에너지를 만들어 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의과대학은 전국에서 최고 우수한 학생이 입학한다.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다른 학생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더 중요했다. 국가고시에 합격하는 것도 중요한 이슈였다. 유급 당하지 않는 것과 상급 학년으로의 진학이 전부였다. 어떤 의사가 되어야 하고, 자신의 잠재력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보다는 인기 있는 전공을 선택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했을 것이다. 그들은 개업을 염려하고, 미래 수익을 걱정한다. 의학에 대해 알아가고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는 즐거움은 잊어버린 지 오래이다(모든 학생이 그렇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것이 오늘날 의학교육 시스템이 만들어 내는 에너지이다. 의학교육은 여러 가지 교육 요소들이 연결되어 있는 일종의 시스템이다. 의학교육 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하고 작동하도록 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마치는 말
의학교육은 의료인의 일원이 되는 사회화 과정이다. 의과대학 학생과 전공의는 강의실 또는 표준화된 임상교육 현장에 영원히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들은 미래의 어떤 시점에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참여하게 된다. 학생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학습자에서 고용된 사람으로, 책임감 있는 사회 구성원으로, 이론에서 실제로, 가르쳐지는 환경에서 스스로 배우는 환경으로, 지지적인 환경에서 자기주도적인 환경에 노출된다. 이것은 의학교육의 초점이 강의실이 아니라 의료의 현장으로 이동해 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학교육은 실제에 대해서 보고, 듣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들이 무엇인가를 직접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교수와 학생, 전공의 모두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의학교육의 종착점이다. 의학교육의 계획과 실천은 의과대학 교육, 졸업후 수련 및 평생학습의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교육, 연구 및 진료의 통합적인 관점에서 설계되어야 한다. 의학교육에 대한 통합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러한 작업의 출발점은 의학교육을 통해 학생과 수련생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교수의 믿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참고문헌
1. 양은배, 맹광호. 미래 의학교육을 위한 다섯 가지 제언. 한국의학교육, 2014;26(3):16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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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Susskind R, Susskind D. 4차 산업혁명 시대 전문직의 미래. 위대선 역. 서울: 와이즈베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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