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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 의학교육의 변화를 추구할 시기

최종 수정일: 4월 7일

 

이 칼럼은 대한의학회 뉴스레터 87호(2017.10)에 게재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인공지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인공지능은 우리 생활 속에 파고들고 있으며, 인공지능의 개발,활용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인공지능에 대한 논의가 활용론과 경계론에 머물고 있었다면, 지금은 인공지능 관련 법적, 제도적 정비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그럼에도 인공지능 시대 의학교육에 대한 논의는 아직 초기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 인공지능 시대에는논리적인 사고를 요구하는 진단, 판독, 치료 영역은 인공지능을 상당 부분 신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로 사라질, 변화될, 새롭게 나타날 의사의 역할에 주목하는 정도이다. 인공지능 시대 의사의 역할을 논의한 문헌은 의사에게 윤리적 의사결정, 환자와의 공감, 창의력이 요구된다고 한다. 인공지능을이해하고 다루기 위한 코딩, 소프트웨어 관련 교육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의 ‘인지 자동화’가 인간의 인지적 영역을 대체할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것을 더 중요하게 교육해야 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선형적 사고(linear mind)이고,그렇기에 어느 정도 타당하다.


인공지능 시대 의학교육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미래를 준비하는 실제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 첫째, 인공지능 시대에는 의학지식이 더 중요해진다. 사고는 지식을 기반으로 한다. 지식 없이는 창의적 사고도 불가능하다. 이러한 지식이 환자 진료라고 하는 임상 맥락과 연결되지 않으면 의미있는 사고는 불가능하다. 인공지능의 발달과 함께 의학지식은 더는 학습할 필요가 없다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문제는 어떤 지식을 교육하는가이다. 앤더슨은 지식을 네 가지로 분류한 바 있으며, 사실적, 개념적 지식보다 절차적, 상황적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둘째, 고등사고 역량을 키워야 한다. 지금까지 의학교육은 의학지식을 암기하고(remembering) 이해하며(understanding), 적용하는(applying) 역량을강조해 왔다. 의사의 역할을 더욱 예측하기 어려운 인공지능 시대에는 학습자 개개인이 미래 의료 환경의 변화와 그에 따라 요구되는 역할을 끊임없이분석하고(analyzing), 무엇이 가치 있는 일인가를 판단하며(evaluating),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고(creating), 그러한 가치를 실행에옮기는 능력(performing)이 요구된다. 아울러, 자신이 모르는 것과 알아야 하는 것을 성찰하며, 자기 스스로 규제하고 발전시켜가는 메타인지 역량을길러야 한다.

셋째, 의학교육에 지능형 교수학습 시스템이 정착되어야 한다. 블룸이 일찍이 말한 ‘2 시그마(개별화된 교육은 전통적인 집단 교육을 통한 평균성과보다 표준편차 두 배만큼 앞선다)’ 문제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가능한 의학교육 시대가 온 것이다.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맞춤형 학습을 제공하는 드림박스(DreamBox Learning), 뉴턴(Knewton), 리즈닝 마인드(Reasoning Mind)가 개별화 학습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넷째, 의과대학 교육과정을 재구조화해야 한다. 아브라함 플렉스너 이후 의학교육은 연역적 교육(추상적 원리와 개념을 먼저 설명하고 관련 사례 적용)을 강조해 왔다. 굳이 의학교육 이론을 거론하지 않더라고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하는 경험학습, 상황학습의 효용성은 충분하다. 따라서 의과대학 저학년에서부터 임상실습을 시작하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기초와 임상이 사례를 중심으로 통합되는 귀납적 모델로 교육과정을 재구조화 할 필요가 있다. 한편, 의학지식의 폭발적인 증가에 따른 의과대학 교육 기간의 연장 필요성에도 역설적으로 의과대학 강의를 1년 6개월로 축소하고, 6~12개월을 창의적인 연구 역량을 함양하기 위한 기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다섯째, 새로운 사회계약을 준비해야 한다. 의사는 풍부한 의학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회는 이러한 의사의 권위를 존중한다. 의료에서 인공지능의 활용은 이러한 의사의 권위에 도전한다. 몇 가지 문화적 쟁점과 의사결정 책임에 대한 논쟁이 있기는 하지만 인공지능은 현존하는 의학지식을 학습하고 임상에서 경험을 축적하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사회는 인공지능의 권위를 더 존중하게 될 것이다(진단과 치료 계획의 정확성과 편견 없음에 대하여). 의사는 과거의 사회계약 모델을 인공지능에 일부 넘겨주어야 할지 모른다. 대신에 인공지능 시대 새롭게 나타나는 의료 정보 접근의 불균형, 이로 말미암은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민감해야 하고, 더 넓게는 전문직 종사자로서 사회 전반의 일자리 창출, 민주주의 가치의 실현, 사회 정의에 더 많은 관심이 있어야 한다. 의사에게 새로운 사회계약 모델이 요구되는 것이다.


오늘날 의학교육은 18세기 프러시아 교육 모델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지식은 과목 단위로 조직되고, 과목은 다시 독립된 단원과 학습 목표로 분절화되어 현실 세계와 동떨어져 있고, 강의실과 임상실습 현장에서 학생의 경청은 최고의 미덕이다. 비판적 사고는 허용되지 않거나 요구되지도 않는다. 특정 의학지식과 술기에 대한 학생의 기억력을 정해진 시간에 일괄적으로 확인하는 표준화된 시험은 가장 가치 있는 판단의 기준이다. 나이에 따라 학년을 나누고 수업을 50분 단위로 구분하며 학생에게 번호를 부여하는 것까지 프러시아 교육 모델을 닮았다. 한마디로 우리의 의학교육은 ‘무대 위의 현자’ 모델에 기초한 ‘생방송’이다. 전통적으로 ‘가르치는’ 개념에 기초한 의학교육 모델은 인공지능 시대에는 더는 유용하지 않다. Khan Academy, Ted-Ed, Coursera, Edx. Udacity 등 많은 온라인 플랫폼은 풍부한 자기주도학습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스탠퍼드, 듀크 의과대학은 많은 강의를 표준화된 온라인 강의로 전환하고 있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질의, 응답 시스템을 운영하는 곳도 있다. 과거의 패러다임에 기초한 의학교육의 점진적 개선은 미래 사회에 조금 더 적합한 의사를 키워낼 수 있겠지만, 인공지능 시대를 이끌어갈 변화 촉진자를 길러 내지는 못할 가능성이 있다. 프러시아 모델을 뛰어넘는의학교육의 새로운 담론과 실천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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