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의학: 대학원에 대해서 생각해 보다.
- ynara2511
- 4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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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4월 7일
이 칼럼은 연세대학교 대학원 인문사회의학 1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발표되었습니다.
연세대학교 대학원 인문사회의학 협동과정이 개설된지 10년이 되었다. 대학원 학생들이 작은 문집을 기획하고 나에게도 짧은 글을 써 달라고 요청했다. 여러 날을 고민하다 내가 대학원에 다닐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이 무엇이었을까 되돌아 보았다. 그리고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두서 없이 적어 내려간 것이다. 그냥 편하게 읽었으면 좋겠다.
연세대학교 대학원 인문사회의학협동과정에는 30명의 대학원 학생이 있다. 인문사회의학이라는 명칭을 생각해보면 의사의 학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정작 거기에는 의과대학 교수, 일반대학 교수, 봉직의, 치과의사, 임상심리사, 현장의 실무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다양한 전공에서(철학, 사학, 교육학, 무용학, 미술학 등) 학사 학위 또는 대학원 석사 학위를 취득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 중 일부는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사회 현장에 있다. 다양한 전공의 사람이 왜 인문사회의학을 공부하고 있을까? 그들과 완전히 소통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학문에 대한 호기심, 의학/의료에 대한 과거의 경험이 상당 부분 작용했을 것이다. 그들은 미래가 분명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하고 싶은 꿈을 갖고 대학원에 왔을 것이다. 나는 지난 10여 년 동안 지원자를 면담하고, 대학원 재학생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가끔은 그들이 대학원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모르는 것 같다(나의 착각일 수도 있다).
나는 연세대학교에서 석사/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던 생각이 든다. 석사과정 동안에는 거의 교수님의 연구실과 교육연구소 사무실에서 보냈다. 박사과정 동안에는 의과대학 조교, 강사로 일하면서 일과 학업을 병행한 시기였다. 그렇기에 부족한 공부를 하기 위해 거의 밤을 새웠다. 교수가 되고 나서 생각해보니 대학원 시절에 ‘대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보았더라면 더 열심히 공부했을 것 같다(나는 나중에야 그것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대학은 창조적 사고의 원천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고,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연결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이를 위해서 밤낮으로 이미 알려진 지식 체계를 습득하고, 실험을 통해 가설을 확인하는 작업을 한다(인문학, 사회과학 또는 자연과학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들이 생각했었던, 그들이 실험했었던, 그래서 그들이 발견했던 것을 학문후속세대에게 전파한다. 이러한 일을 하는 곳이 대학원이다. 즉, 대학원은 진리를 탐구하고 전파하는 곳이다.
통섭이나 융합이라는 단어가 일상이 되었다.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특정 학문분야의 단일 개념이나 원리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인문학, 사회과학 및 자연과학의 융합을 말한다. 특히 창의적 사고의 토대는 융합이라는 점도 강조한다.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의 융합, 의학과 자연과학의 융합, 의학과 인문학의 융합을 이야기한다. 인문사회의학 협동과정도 융합적 접근의 하나이다. 인문사회의학은 의학, 의료를 바라보는 과거의 생물학적 패러다임을 전환하여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의학의 새로운 설명모델을 찾고자 한다. 이러한 설명모델을 바탕으로 미래 의료인의 양성과 의학과 의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대학원생들이 지금 탐구하는 있는 하나의 주제에 묻히는 것을 원치 않는다. 다른 학문에 대해 조금 더 융통성 있는 태도를 유지하고, 타 학문과의 접점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대학원은 미국의 대학원 교육 모델을 많이 닮았다, 매 학기 이수해야 하는 학점이 있고 일정한 요건이 갖추어지면(일반적으로 이수 학점, 어학 능력 등) 종합적인 지식을 점검받는다. 그리고 나면 자신이 관심 있어 하는 주제를 선정해서 연구를 수행하고 일정한 성취에 도달하면 학위를 취득한다. 과거나 지금이나 대학원 학생들은 정해진 학점을 이수한다(일반적으로 단위 학위과정에서 30학점, 즉 10과목). 학점이 채워지면 자신이 모르는 분야가 있더라고 공식적인 과정을 통해 더 학점을 이수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나는 학생들에게 세 가지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 말해 주곤 한다. 첫 번째는 귀로 공부하는 방법이다. 강의를 들어러 간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일반적으로 귀로 공부하는 것은 주당 18시간 정도이다(대학원은 9시간 정도이다). 상당히 제한적이다. 두 번째는 몸으로 공부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직접 체험을 통해 학습하는 것이다. 학생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대학 생활 중에 몸으로 공부하는 기회는 많지 않다. 세 번째는 눈으로 공부하는 것이다. 이것은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없다. 자신이 전공하는 영역, 자신이 관심 있는 부분의 공부를 책을 통해서 공부하는 것이다. 나는 대학원 공부의 핵심은 자기 스스로 얼마나 많은 책을 읽는가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물론 깊이 있는 책읽기이다. 나는 학생에게 대학 시절에는 주당 1권 연간 52권 4년 동안 200여 권의 책을 권장한다. 물론 대학원 시절에는 매주 2권, 연간 100여 권 2년 동안 200여 권의 독서를 권장한다. 책을 읽고 나면 책마다 1, 2, 3번으로 번호를 매겨가고, 각 각의 핵심 내용을 요약하기를 권장한다.
대학원 학생은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서 깊이 있게 파고들어야 한다. 그럼에도, 혼자서 공부하는 사람 치고 학문적으로 큰 업적을 이룬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나는 대학원 학생이 다른 사람과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고 그들의 피드백을 받고 나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물론 내가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서 나만큼 공부하고 알고 있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의견은 중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그들을 설득하는 것도 나의 임무 중의 하나고, 그들과의 토론의 통해서 내가 깊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잡아내고 더 심화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경청할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그들의 주장을 근거를 바탕으로 논증할 수 있어야 한다. 혹자는 한국 학생들의 문화가 토론에 익숙하지 않다고 한다. 수년간 대학원 수업을 해 보면 어느 정도 사실인 것 같다. 아마도 교수가 있는 곳에서 자유로운 의사 표현은 제약이 있는 것 같기는 하다. 그렇지만 대학원 선후배 사이의 대화 양상은 전혀 다르다. 그렇기에 대학원 학생들 사이의 토론은 학문적으로 성장하는데 너무나 중요한 요소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학문이 있다. 대학은 다양한 학문 가운데 같거나 비슷한 관심을 둔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다. 당신이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다른 사람도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세상의 문제를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료가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대학원을 졸업하고 사회에서 일하게 될 때 아마도 그들도 같은 일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것이 교육이든지, 연구이든지, 봉사이든지 말이다. 그러므로 대학원은 평생을 함께할 동료를 만나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대학원에서 당신과 같은 고민을 하는 배우자를 만나면 좋다(어떤 사람은 다른 전공의 배우자가 더 좋다고도 한다). 그는 당신의 학문적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고,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어찌 되었든 같은 고민을 하는 동료를 만나는 것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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