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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의학교육 정책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최종 수정일: 4월 7일

 

이 칼럼은 2025.1.1일 의학신문 신년특집에 게재되었습니다.


의과대학이 우수한 의사를 양성해 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연구를 통하여 의학 발전을 이끌었으며(의학 분야 논문 수 세계 13위), 탁월한 의료서비스 제공으로 질병 치료와 국민 건강증진(Health care index, 세계 2위)에 이바지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부의 의학교육 정책이 부재한 가운데, 그토록 유능한 의사가 배출되고 있는 것은 기적이다. 기적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곳에는 학문 후속세대를 양성하는 교수의 헌신과 우리나라 의학교육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견인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한국의학교육학회, 대한의학회 그리고 한국의학교육평가원과 같은 민간 기구들이 있었다.


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과 관련한 국가 정책이 2024년 2월 발표되었다. 증원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가치와 성과는 명확하지 않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과 실행계획은 제시되지 않았으며, 정책을 시행하는 데 필요한 재정·인적·물적 자원은 준비되지 않았다. 정책이 아닌 정책에 전공의는 사직하였고, 학생은 휴학하였다. 의학교육의 질은 배출되는 의사의 역량과 직결되고, 의학 연구의 수월성과 의료서비스의 수준으로 연결된다. 의학교육·의사 역량·의학 연구 그리고 의료서비스 수준이 풍목지비(風木之悲)에 있다.


의학교육 관련 다양한 민간기구 가운데, 의과대학 교육역량과 의학교육 질 관리를 담당하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이하 의평원)의 역할에 관심이 높다. 의평원은 세계의학교육연합회(WFME)가 설정한 의학교육 국제 기준을 우리나라 의과대학이 충족하고 있는지를 공식적으로 평가하고 인증하는 기관이다. 많은 사람이 교육기관의 역량을 초월한 대규모의 급진적 증원 정책으로 의과대학이 평가인증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의학교육의 질이 떨어질 것을 우려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평원은 관련 규정에 근거하여 입학정원 증원에 따른 의과대학의 준비 상황과 교육역량을 확인하기 위한 ‘주요변화평가’를 시행하고 있다. 지도·감독 권한이 있는 정부는 주요 변화평가 계획에 대한 사전심의를 요구하고, 의과대학 컨설팅 관점에서 ‘불인증’이 없어야 한다고 말하며, 평가인증 기관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고등교육기관의 평가·인증 등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령(안)에 대한 입법예고를 마쳤다.

민간기구 의평원의 독립성을 보장하라는 수많은 현수막이 거리에 붙었으며,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기대하는 많은 사람이 정부 정책을 반대하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의평원의 평가인증과 정부의 정책이 대립각에 놓여 있다.


의과대학 평가와 인증을 담당하는 의평원이 정부와 이해관계자의 영향과 간섭없이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공정과 신뢰라는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이다. 의평원은 2016년 WFME로부터 국제적 수준의 평가인증 기구로 지정받았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의과대학 졸업생은 세계 어디에서도 학력과 역량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WFME는 평가기관은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판단에 기초하여 평가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WFME Standards for Accreditation 2024의 Part A. Criterion 1).


미국의 고등교육법(Higher Education Act) 제20조는 평가인증 기구가 관련 협회나 회원 조직으로부터 행정적으로나 재정적으로 독립되어 있어야 하고, 연방규정집(Code of Federal Regulations) 제34조는 평가인증 기구가 그 기준을 평가하는 구체적인 절차를 자체적으로 결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영국의학협회는 의료법과 자체 규정에 근거하여 평가 일정 수립부터 평가 방법 선택, 결과판정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전문가의 판단을 존중하고 있다.

한국 의학교육 중대한 전환점 맞아


우리나라 의학교육은 중대한 전환점에서 있다. 2025학년도 의과대학 정원 대폭 확대는 의과대학 교육역량과 의학교육의 질 관리를 담당하는 의평원의 전례없는 도전이 되고 있다. 지금은 의평원이 평가인증 전문기관으로서 공정하고 신뢰하는 평가를 수행하고, 그 결과를 사회에 투명하게 발표할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의과대학 교육역량을 강화하고 의학교육의 질을 유지·향상하기 위하여 정부와 민간기구 의평원의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 의과대학이 국민 건강과 의료서비스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우수한 인력을 양성해야 하고, 의학교육 질 향상을 위해 지속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점은 정부와 의평원의 생각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를 바라보거나 해결하는 방법에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밥 제섭(Bob Jessop)이 언급하였듯이 정부는 전통적인 행정 패러다임에 기초하여 정보를 독점하고 절대적 권력을 사용하여 감시와 통제를 통하여 목표에 접근하려고 한다.

반면, 의평원은 존 피에르(Jon Pierre)와 가이 피터스(Guy Peters)가 말한 협의와 합의 과정을 통하여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사회적 통치 시스템 관점에 기초하고 있다. 민간기구 의평원에 대한 통제와 관리적 접근은 정부의 의도를 왜곡하게 만들고, 민간기구의 활동을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이해관계자 상호 간의 신뢰 구축도 어렵게 한다. 오늘날 정책 형성에 가장 잘 부합하는 개념은 협의와 합의이다. 이러한 개념을 이해하고 공유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출발이다. 민간기구 의평원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수행하여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정부는 그 결과를 바탕으로 의과대학 교육역량을 강화하고 의학교육의 질 향상을 위한 행정·재정 지원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의학교육 정책 전문가 참여 필수적


의학교육 관련 정책 형성 과정에 전문가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다. 전문가로 대표되는 의과대학 교수는 의학교육 관련 국가 정책이 수립되고 실행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의과대학의 두 가지 문화와 관련이 있다. 하나는 학문적 전통을 강조하는 대학일수록 교수의 정책 참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충족적예언과 관련이 있다. 우리는 교수가 의학교육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과정에 참여하거나 그러한 의향을 내비치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은 일로 여겨 왔으며, 비록 의학교육 정책 형성과 실행 과정에 참여해도 바꿀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교수의 사회적 책임은 학문적 지식의 생산에 그치지 않고, 정책 및 공공의 이익에 활용하는 실천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전문가의 참여는 정책의 신뢰성과 타당성을 높이는 핵심 요인이며(Lasswell, 2018), 다양한 학문적 관점을 통합하여 종합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Weiss, 2019; Dunn, 2021). 잘못된 의학교육 정책은 값비싼 실패(costly failure)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에 의학교육 현장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의 정책 참여는 교수에게 주어진 중요한 사회적 책무이다.


민간기구 의평원의 평가인증 활동을 건축의 감리 활동으로 비유한 적이 있다. 성수대교의 상부 트러스가 붕괴하여 시민 32명이 사망한 사건이 30년 전에 있었다. 당시 한국의 교량 공사 능력은 세계적인 수준이었음에도 감리가 부실했기 때문에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의과대학에 대한 평가인증은 신뢰할 수 있는 의사 양성 시스템을 떠받치는 감리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을 민간기구가 자발적으로, 그것도 성공적으로 담당해 온 영역이다. 근시안적인 시각에서 이러한 감리를 부실화시키는 것은 의학교육의 부실을 방치하고, 배출되는 의사의 역량을 떨어뜨리며, 궁극적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에 빠뜨리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민간기구 의평원의 평가인증 활동을 강화하고 지원하는 법률 제정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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